커피맛 라멘 ~ 아로마의 괴(주 1)
커피 카레라멘 편
'커피라멘'이라는 메뉴로 일부 매니아층에서는 매우 유명한 아로마가
새로운 메뉴를 개발했다더라
그런 정보를 손에 넣은 것은
08년 8월도 거의 다 지나가, 후반기에 접어 들 무렵이었다.
가야만해.
도쿄쪽에 볼 일은 없지만... 여긴 꼭 가야해.
그런 이유로
재래선 (주 2)과 신칸센을 갈아 타 가며 편도 3시간이나 들여
와 버렸다. '아로마'에 ㅎㅎㅎ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발길을 옮기니
오늘도 역시 손님은 없다.
내가 올 때만 손님이 없을 리는 없으니
내가 없을 땐 장사가 잘 되는 것일지도?!
음... 아마 그럴거야.
작고 아담한 가게 내부를 둘러보니, 이런 종이가 붙어있었다.
드디어 손으로 쓰는 걸 그만 둔 건가...
참고 : 2005년 4월 경, 이 가게 메뉴
참고 : 2007년 2월 경 이 가게 메뉴
이렇게 메뉴를 보고 있자니
커피 라멘 이외에도
커피 면을 사용한
텐푸라 소바→타누키소바→키츠네소바
라는 불가사의한 3단 진화과정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사진들을 뒤적거리다가 이 것을 알아 챈 순간,
「우와! 나 어쩌면 엄청난 발견을 한 거 아냐?」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글로 써 놓으니별 볼일 없는 정보였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실망스럽구먼...
문득 옆 쪽을 보니
쇼 케이스에선 여전히 커피면을 팔고 있었다.
한 다발에 300엔.
예전에 왔을 땐 좀 더 쌌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밀가루 가격 급등 때문인지 커피면에도 가격 조정이 있었던 듯 하다.
주문을 하려고 카운터 쪽을 바라보다가
주인장과 잠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 「새로운 메뉴가 생겼다던데요?」
주인장 「네. 핫과 아이스가 있습니다만...」
딱 타이밍 좋게 물어 봐 주시는 군요? 랄까, 기다렸다는 듯 대답이 돌아왔다.
동시에, 주인장의 얼굴색이 확 밝아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내가 아이스를, 처가 핫을주문했다.
약 10분 정도 기다리니...
주인장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이런 것이었다.
나「이거, 이름이 뭡니까?」
주인자「아이스 커피카레라멘입니다.」
카... 카레?!?!
그.. 그렇군, 분며 카레 향이 난다.
라멘 국물이 카레로 만들어 진 건가?
※ 이름이 '카레 커피 라멘'이 적절하다는 생각은 합니다만,
가게 주인이 그렇게 정했으니 별 수 없지요 뭐...
그...그렇다고 해도...
이 얼마나 크레이지한 메뉴란 말인가...!!!
토핑이 무려 삶은 달걀, 커피콩, 키위, 바나나, 햄..거기에아이스크림까지...
이젠 카페 마운틴 (주 3)과 같은 영역으로 돌입해 버린 건가...
내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와중에도
가게 주인은 담담히 할 일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처가 주문한 '핫'이 다 된 모양이었다.
주인장「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이것이핫 커피 카레 라멘이다.
아이스 카레 커피면보다 카레 향이 강해서,
눈 앞에 놓이는 순간 '아, 이건 카레구나'라고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뜨거운 국물에 키위랑 바나나를 띄운 라멘이라니...
아로마의 커피 라멘에 과일종류가 들어 간 것은
2007년 2월에 먹었던 커피 냉 라멘이 처음이었다는 것 같은데
어째서
'과일'이 '핫' 커피 라멘에까지 들어가게 된 건지...
명백히 미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질주하게 된 아로마였다.
주인장은 요리를 우리 앞에 내려두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유를 가져왔다.
아아.. '넣으라'는 거군.
알겠어요. 알겠다니까요.
자, 이것으로 밀크커피 카레라멘이 되었다.
이미 일반인들은 손조차 댈 수 없는 수준이 되어버린 것 같지만...
일단, 먹어볼까...
잘먹겠습니다!!!
우선, 카레와 우유가 섞인 국물부터...
음...
기본적으로는 카레맛이다.
다음으로는... 뭐랄까, 커피맛 비슷한 맛이 난다.
거기에 다시라도 넣은 것 같긴한데...
거기까진 잘 모르겠고...
카레 & 커피라는 강렬한 맛들 앞에서
다른 맛들은 철저하게 봉쇄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애초에
거꾸로 생각 해 보면, '커피'와 '카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안 될지도 모른다.
다음으론, 면을 먹어보았다.
면발인 가는 것과 굵은 것, 두 종류가 있는데 이 라멘에는 가는 면발을 쓴다고한다.
입 근처에서 카레 향을 풍기는 커피 면은
입 안에 들어가면 갑자기 커피 특유의 쓴 맛을 낸다.
냄새는 스파이시하고 맛은 어른의 쓴 맛.
진정 빡센 조합이랄까.
의외로 나쁘지는 않진 않은 조합이라고나 해야겠다.
다음, 토핑에 젓가락을 대 보았다.
키위.
내가 지금껏 본 키위 요리 중,
가장 잔혹한 패턴이 아닐까 싶다... ㅎㅎ
카레 국물이 배고, 커피 면에 올려 진 데다가, 우유까지 뒤집어 써 버렸으니...
키위에게 동정이 갈 정도다.
맛을 얘기하자면 이 라멘에서는 '입가심'정도로, 나름 존재감은 있다.
겉면에 카레가 배어 있기는 하지만
씹어보면 키위 특유의 상큼함이 살아있다.
이건 이것대로 있을 법 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핫'을 먹고 있던 처는 키위가 맛 없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리고...
바나나
원래는 흰 색인 바나나는,
커피 카레 라멘의 강렬한 개성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과일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고 그저 단맛나는 야채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뭐, 있을 법 한 일이지...
맛이고 뭐고 거의 고구마 수준이었으니...
그리고...
아이스크림
다른 재료들이 너무나도 기발해서, 눈치 못 채고 있었는데
라멘에 아이스크림이 들어 간 시점에서 이미 훌륭한 기식이 아닌가!
차가운 카레 국물 안에서 조금씩 녹아가더니
결국은 완벽히 국물에 섞여버렸다.
왠지 맛있어 보이기도 하네? ㅋㅋㅋ
아닌가? 이 사진만 놓고 보면 맛있어 보이지 않아요?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은 카레 국물에 한층 깊은 맛을 선사해 주었다.
뭐,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싶은데.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면서
이번에 먹은 커피 카레라면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았다.
커피 면에, 왠지모를 카레 국물
토핑으론 아이스크림, 키위, 바나나
재료들을 써 내려가다 보니이건 뭐 완전 크레이지한 메뉴같지만
뭐랄까,
왠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조화 되어 있는듯 한 기분마저 든다.
물론,
나 자신이아로마의 맛에 익숙해져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나,
그것 뿐만이 아니다.
이미 되돌릴 수 없을만큼 '기식'으로 진행해 나간 아로마가,
커피 라멘에 카레 스프를 도입한 것으로 인해
기사회생의 길을 찾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보통 기식 메뉴라 함은, 폭주를 거듭하다 나락으로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아로마의 커피라멘은
기식의 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정답'을 찾아낸 것 (일지도 모른다)
매우 희귀한 패턴으로서
기식계에 길이 남을 일이라 생각한다.
잘먹었습니다.
끝
이번에 다녀 온 곳은
아로마 입니다.
장소는 여기를 참고해 주세요.
쉬는 날은 화요일이고, 가끔 일요일에 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
주 1 : 괴 (怪)
일본에서 '기괴하다'라는 의미로 이야기 할 때 저 '괴'자 만을 쓰는 경우가 많다.
주 2 : 재래선 (在来線)
말 그대로 예전부터 있던 국철 등.
주 3 : 카페 마운틴
나고야에 있는 전설의 '기식 카페'. 엄청난 메뉴들이 즐비함.
일본에서 '기괴하다'라는 의미로 이야기 할 때 저 '괴'자 만을 쓰는 경우가 많다.
주 2 : 재래선 (在来線)
말 그대로 예전부터 있던 국철 등.
주 3 : 카페 마운틴
나고야에 있는 전설의 '기식 카페'. 엄청난 메뉴들이 즐비함.